한스 호터 Hans Ho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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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오펜바흐에서 태어난 베이스 가수. 어릴 때 뮌헨으로 옮겨, 뮌헨 음악원에서 성악과 피아노 및 오르간을 배우고, 뮌헨 대학에서 철학과 음향학을 배웠다. 처음에 오르가니스트와 합창 지휘자로서 활동을 시작했으나, 가수로서의 재능을 마토이스 레머에게 인정받아, 1929년에 헨델의 《메시아》에서 베이스 독창자의 대역을 불렀고 또 체코슬로바키아 오파바에서 《마술피리》의 Sprecher를 불러 데뷔했다. 그 뒤 프라하와 독일 중부를 중심으로 노래하고 있었으나, 1934년에 함부르크, 빈의 각 국립 가극장에 초대되어 유명해지고, 27세로 캄머젱거(궁정 가수)의 칭호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는 1945년부터 빈 국립 가극장, 1948년부터 런던의 코벤트 가든 가극장에서 노래하고, 1952년부터는 바이로이트 음악제에도 초대되어 《니벨룽의 반지》의 보탄, 《파르지팔》의 암포르타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마르케 왕, 《마이스터징거》의 한스 작스 및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등을 불러 현대 최고의 격찬을 받았다. 1972년에 무대에서 은퇴하여, 독일 리트의 리사이틀을 갖는 외 오페라 연출가로서 활약하고 있다. 1962년에 내한하여 리사이틀을 가졌다.

 

오랫동안 세계 최고의 보탄으로서 명성을 떨친 호터는 그 역이 오버랩되어 신기에 가까운 존재의 가수로 생각되었다. 그 깊은 맛이 있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또 압도하듯이 울리는 베이스 바리톤에는 예사 것이 아닌 범하기 어려운 기품과 정신적 기백을 느낄 수 있다. 앞으로도 이런 위대한 가수가 나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될 정도이다. 그는 만년에는 독일 리트를 특기로 하여, 세계 각지에서 많은 리사이틀을 가졌다. 그만큼 훌륭한 목소리의 사람이라면, 섬세한 뉘앙스가 중요한 가곡에서는 아무래도 아쉬움을 다소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세부에 구애받지 않는 그 천의 무봉한 여유 있는 커다란 골격의 노래는, 좀 기교적이 되기 쉬운 많은 리트 가수 중에서 역시 이색적이다. 말할 나위없이 금세기를 대표하는 명가수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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