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도 크라우스 Alfredo Kr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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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의 테너 가수. 20세기 후반의 가장 위대한 리리코 테너 가수로 불린다.

  대서양에 위치해 있는 카나리아 제도의 라스 팔마스 데 그란 카나리아에서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오토 크라우스는 성(姓)인 Kraus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오스트리아의 혈통이고 (그러나 어머니는 스페인 사람) 독일 오페라를 많이 노래했다.

  카나리아 제도는 유럽 대륙의 가수가 남미 대륙에 투어에 향하는 때 종종 기항하는 땅이고 현지 오페라 극장도 적당한 공연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오페라와 사르수엘라를 좋아하는 부모님에 이끌려, 소년 알프레도도 어린 시절부터 보컬에 대한 관심을 심화한다.

  1945년부터 전기 기술자가 되기 위해 공업 학교에 다니지만, 한편 현지 합창단 등에서 노래를 불렀다. 곧 발탁되어 1948년에 스페인 본토 바르셀로나에서 본격적인 보컬 훈련을 시작한다. 1955년부터는 이탈리아로 유학한다. 호흡, 성대의 움직이는 방법 등 과학적인 보컬 훈련을 장기간 지속하는 한편, 눈앞의 돈은 얻을 수 있지만 나쁜 자기 스타일을 익히기 쉬운 성급한 공연 무대를 피했다. 이 금욕적인 훈련 기간은 그러나 클라우스 후 경력을 크게 개화시키는 것이다.

  1956년에는 이집트 카이로 극장에서 베르디 <리골레토>의 만토바 공작 역, 푸치니 <토스카>의 카바라도시 역으로 데뷔했다. 이 때도 크라우스는 카바라도시 역이 그의 음질 · 성량에 맞지 않는 것을 깨닫고 이후 레퍼토리에서 제외한다고 억제적인 태도로 임하고 있다. 같은 해 베니스와 토리노에서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 역도 맡아 1958년 리스본에서의 라이브 녹음(마리아 칼라스와 공연)이 오늘날에도 호평받고 있는 등 1950년대 말까지 장기의 하나로 삼았다.

1959년에는 도니제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에드가르도 역에서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조안 서덜랜드와 공연)에, 1960년 벨리니 <몽유병의 여인>의 엘 비노 역으로 밀라노 스칼라에 각각 데뷔하는 등 리리코의 여러 역으로 전문가의 지위를 급속하게 굳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이름을 유명하게 한 것은 1965년부터 임한 마스네 <베르테르> 주역이었다. 그의 노래 아리아 '봄바람이여, 왜 나를 깨우는가 (Pourquoi me reveiller)'는 절창으로, 크라우스는 티토 스키파의 재래라고까지 칭해지게 되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크라우스는 기술의 완벽을 기하기 위해 레퍼토리를 베르테르와 도니제티 <연대의 딸> 안토니오 역, <라 파보리타> 페르난도 역 등 10개 정도로 맞춘 후, 연간 무대 수를 20-25개로 제한하고 금욕적인 무대 생활을 보냈다. 그런 노력으로 70세 이후 병으로 쓰러지는 1999년까지 현역으로 변함없는 미성을 유지했다. 1999년 9월 10일, 마드리드에서 향년 7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92년에 열린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식에서 올림픽 찬가를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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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기간 요약 / 상세내용
1992-07-25 바르셀로나 하계 올림픽 개막식에서 올림픽 찬가를 노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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